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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거리두기와 백신
  • 편집국 편집인
  • 등록 2021-10-04 1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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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Distancing)와 백신(Vaccine)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최고 수준인 전염병 경고 6단계인 팬데믹(Pandemic)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전염병 ‘대창궐’인데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말은 방역, 거리두기, 백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단어들을 워낙 많이 들었기에 이제는 어느새 친숙한 말이 되었다. 방역을 위한 가장 최상의 조치는 거리두기와 백신이다.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나 감염 환자를 고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감염병 예방을 위해 사람들은 마스크를 써야 하고,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주기적인 주변소독을 해야 하며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대처할 수밖에 없다. 

거리두기와 백신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하면서 자주 비유로 든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죄에 비유하고, 죄를 예방하기 위한 백신을 사용해야 하며, 죄와는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비유는 완벽할 수 없다. 어떤 특징을 두고 비유를 통해 더 강하게 인식하게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사용하는 것이다. 비유는 수사법의 일종으로써 고대나 중세에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고 당시에는 설교도 비유의 방법으로 전달하곤 했다. 하지만 비유의 문제점은 자칫 알레고리적이 될 수 있고 잘못된 비유는 복음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게 하기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를 읽을 때도 비유가 주는 교훈만 받고, 비유에 사용된 이야기는 버려야 한다. 민간에서 전해 오는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느린 거북이 같은 사람도 부지런하고 성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실제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그것 봐, 거북이가 토끼보다 빠르지. 거북이는 토끼보다 빠른 동물이야.” 비유를 실제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이런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코로나19에 의해 감각적으로 전달하려고 하는 비유도 마찬가지다. 비유는 실제와 혼동하면 안 되고 교훈만 받게 될 때 의미가 있다. 이제부터 비유로 자주 사용되는 거리두기와 백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거리두기(Distancing)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는 절충형 방역 방식을 ‘생활방역’이라고 한다. 생활방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내용이 거리두기다. 사람은 친밀함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사는 존재인데 전염병 때문에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다. 물론 사람과의 거리를 두라는 것은 모든 관계를 끊고 혼자 살아가라는 말은 아니다. 전염병의 원인균이 비말이나 접촉을 통해 옮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자신이 숙주가 되어 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역할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단절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혹시 모를 전염 원인을 사전에 차단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거리두기를 설교에서 비유할 때 죄와의 거리두기라고 말한다. 만약 이런 비유를 실생활에 적용해 보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죄에 감염되어 있기에 죄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결과에 이른다. 물론 비유는 실제가 아니기에 교훈만 받으면 된다. 하지만 교훈을 받기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 죄로 오염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한 가운데 내려오셨고 죄로 오염된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죄의 바이러스가 가득 퍼져있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는 오히려 죄의 바이러스가 있는 곳으로 ‘거리두기’를 깨고 ‘거리 좁히기’를 해야 한다.


백신(Vaccine)

코로나19의 확산에도 한 가지 희망과 기대는 백신의 출시와 접종이다. 물론 백신을 맞는다고 해도 코로나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래도 불안과 공포를 물리치고 든든한 보장이 되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설교할 때 백신을 예수님 또는 성경말씀에 비유한다. 우리에게는 죄를 이길 수 있는 완벽한 백신이 이미 주어졌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전하는 목회자마저도 죄에 넘어지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백신을 맞으면 바이러스로부터 전적으로 안전할까? 백신은 계속 맞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한 번만 맞으면 될까? 사실 시중에 출시된 코로나 백신은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신 백신은 완전하다. 문제는 백신 접종이 제대로 됐는지는 우리는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신다. 

비유는 의미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교훈으로 듣고 그 이야기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그래도 하나의 비유조차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타당함이 있어야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을 담아내는 최상의 그릇이 되지 않을까? 국가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킬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비유를 들어도 항상 주의해야 한다. 


유승주 목사(주님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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